주일예배 설교문

[2022-03-06] 주일예배 / 누가복음 14:25-35 / 내 제자가 되려느냐

주마음교회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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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공의 길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주마음교회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사람들은 '아 이 맛이야' 라고 느껴지는 '제 맛' 을 사모하고 찾는 마음들이 있다. 

맛집이라 해서 기대하고 갔는데 별로 그렇지 않아서 실망할 때가 있고, '그래 이 맛이지' 라고 할 만큼 흡족하게 했던 맛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도,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라다운 나라, 또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어떤 판사가 여러 유혹을 잘라내고 정의와 법에 의해서만 판결을 내릴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 주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예수 제자의 맛' 에 대해 말씀하신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을 때 어떤 맛이 기대될 것인가, 그 얘기를 예수님이 하고 계신다. 


특별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을 3번 반복하시는데, 

부정적 표현을 긍정적 표현으로 바꿔보면 '진짜 제자가 되는 방법' 을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요약해 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이 핵심이다. 

이것이 예수님 제자의 정체성이다. 



1. 우선순위


26 상반절. '누구든지 자기 부모,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복음서에 있는 말씀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예수님이 매우 엄격하고 매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니까 받아들이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지금 '미움' 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이걸 미워함으로써 생겨나는 결과, 곧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 이론상 부모님이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도 제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예수 제자에게서 느껴지는 맛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한쪽에 예수님을 두고 다른 한쪽에 다른 모든 것을 두고 이 두 개를 계속 비교하면서 설명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일종의 밸런스 게임이다.


어떻게 부모를 미워하지?, 자식을 미워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의 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효과가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애는 밥도 안 먹고 책을 읽어요' 라고 말한다면

이는 진짜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너무 좋아해서 밥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읽는 일이 허다하다는 뜻이다. 이 아이에게는 그것이 더 좋은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한마디로 '우선순위' 라고 한다. 

더 중요한 것, 제일 가치있는 것, 살아가면서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곧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예수가 자기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예수 제자의 맛을 내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지켜야 할 가치들이 엄청 많은데 어떻게 그 중 예수가 제일 중요한 가치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번 '목자목녀수련회' 는 정말 큰 은혜가 있었다.

그 중 76세 한 여성 목자님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분 간증이 기억에 남는다.


식당 운영하는 한 vip 를 전도하기 위해 식당에서 물도 나르고 홀서빙도 하는 등 사랑으로 몸소 섬기셨고, 그 모습을 보고 vip의 마음 문도 열리면서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에서 5분 남짓 예수님 얘기를 잠시 전했는데 그 순간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그분은 나를 사랑하는 분이 맞구나' 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후 교회에 나오시고 목장에도 출석하시는데 지금도 그 목원은 예수님 얘기만 나오면 운다고 한다.

그분에게 예수님은 그저 책속에 계신 분이 아니었다.


영국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자기 영적 상태를 점검할 때 복음서의 예수님 십자가 사건을 읽는데도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내가 병들었구나' 라고 알아챘다고 한다. 


책 속의 예수님은 '참 훌룡하시고 구원자로서 많은 일을 하셨구나' 라는 지식의 영역에 덮여 있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신 분이셔서 그분에 대해 듣거나 읽거나 말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다.


'너희가 부모, 자식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말을 들을 때에 책 속의 예수님만 알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냉정하다' 고 느끼지만, 

살아계신 인격이신 예수님과 지내고 있는 사람은 '그렇죠, 당연하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을 버리겠어요' 라고 말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부모님, 내 가족, 자식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그 위의 세계가 열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에 예수님을 놓고 다른 한편에 부모, 자식, 형제, 소유, 나의 커리어, 건강 등 모든 것을 놓았는데도 예수님 쪽이 더 무겁게 내려가는 가치가 되는 것이다. 

예수가 제일 소중한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이다. 


오늘 본문 직전에 하나님 나라 비유 중 '잔치 비유' 가 있다.

어떤 주인이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초청하는데,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한다.

거절의 공통점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합당한 이유' 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주인은 화를 낸다. 

그런 후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을 데리고 오게 하였고 먼 곳까지 가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다 데려와서 잔치 자리를 채우라고 명한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바는 '하나님 나라 잔치' 는 천국에 가장 가깝게 들어올 것 같은 유대인들, 아브라함 혈통들은 못 들어간다는 것, 오히려 지옥의 떌감이라고 불렸던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집 사고 차 사고 했던 사람들은 잔치가 아니어도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은 지체 높은 분이 연 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이다.

곧 예수가 절대적 우선순위가 된 사람들이다. 


그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고자 기도하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바로 예수의 맛을 보여주는 자들이다.


* 하나님은 3등입니다.  - 작자 미상 


하나님은 3등입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 여유가 남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되면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울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고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잡은 내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1등 삼으신 하나님을 우리 모두가 1등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봐도 '저 사람 인생에서 예수가 제일 중요하구나' 라고 느껴지는 사람, 세상은 이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피조세계는 이런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나타나는 것을 오랫동안 학수고대해 왔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결국 다른 것에 우선순위가 있는 사람은 그런 피조세계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절대적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제자의 맛을 내는 사람이다.



2. 자기 목숨까지도


26 하반절.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 제자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그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저 사람이 지금 자기 목숨은 제대로 돌보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 하는 분들 생각해 보면 남의 돈 받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내가 직접 사업을 일구는 경우, 그냥 모든 것이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된다. 

그래서 사업하는 성도님들 보면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도 많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간혹 옆에서 볼 땐 분명 밤잠도 못자고 갖은 노력을 다하면서 계약 따내려고 하고, '저분이 도대체 언제 쉬고 잠을 잘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웃고 있다. 

이 분 입장에서 사업이 굴러가고 돈이 벌어지고 조금씩 규모가 커지는 것이 그렇게 재밌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정말 힘들겠다 싶지만 그 사람은 돈 버는 재미 때문에 신이 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옆에서 보면 삶이 비극 같지만, 예수를 정말 만난 제자의 마음 속에는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과 같이 살 수 있다니,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고, 목자가 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그래서 이제 자기 목숨이 안 아까운 것이다.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 말씀이 너무 높은 허들처럼 보인다. 

'내 목숨까지는 정말 어렵겠다' 이런 말 많이 듣게 된다.

진짜 이걸 고민해 봤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정말 만나게 되고 그분이 내게 행하신 일이 정직하게 딱 이해가 되는 순간 '당연한 것' 이 된다. 

이것을 좀 다르게 표현하면 27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다. 


로마시대 죄수에게 6-70kg 되는 십자가를 지고 일부러 번화가를 지나게 한 후 그 종착지는 사형장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끌고왔던 그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된다.


자신을 죽일 사형 틀을 지고 가는 것,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뜻이다.

곧 예수님은 '죽으러 와라' 라고 하시는 것이다.


처음 예수님의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지?', '인기 있더니 너무 과격해' 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 는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내가 그렇게 의롭고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의 삶에 불과했구나' 이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했기 때문에.


그걸 깨닫고 나니 그 옛 사람의 삶이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지고 '내가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고,

몸통이 갈라지고 거기에 새 삶이 살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고, '지금도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살아왔던 내 삶은 이제 죽었구나' 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새 삶이 살아진다는 것이다. 


[마태 16:24-25]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가 고집했던 그 삶을 예수님 만나고 나서 십자가 앞에 부딪치게 되면 '이 인생은 죽어야 되겠구나, 나의 못난 교만과 자존심은 죽어야 되는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고, 자기 목숨을 주 앞에 내던질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열린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비밀이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이 더 중요해진 사람, 인생보다도 영생이 더 중요한 사람, 이것이 예수 제자의 맛이다.



3. 계산해 보라


28-33절까지는 예화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건축비용 문제', 또 하나는 전쟁 군사력 비교 문제인데 같은 목적을 가진 말씀이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기 전 '내가 이 공사 비용을 댈 수 있는지' 부터 계산해야 한다.

또 전쟁을 치르려고 하는데 우리 군사 만명으로 쳐들어오는 이만 명을 이길 수 있는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 만약 이기기 힘들 것 같으면 빨리 화친을 청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원리를 적용시키신 말씀의 뜻은

'너희가 나를 믿으려면 제대로 믿고 안 믿으려면 아예 시도도 하지 마' 라는 것이다. 

믿는 듯 하다가 말면 그것처럼 불쌍한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데 믿는 자의 길, 제자의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진짜 고생하게 된다.

같은 고생을 하는데 얻는게 없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 속에 기쁨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기쁨은 없는데 고생은 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산 잘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 지고 따르는 길 밖에는 예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우리가 많이 착각하는 포인트가 이것이다.


예수님을 믿긴 믿겠지만 광신자처럼 믿지는 않겠다, 예수를 믿겠지만 교회에 너무 빠지지는 않겠다. 

이 말은 '내가 결혼을 하긴 하겠지만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지는 않겠어요' 라고 하는 말과 같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의 '팬인가 제자인가']

팬들은 스포츠 스타들에 대해 줄줄 꿰고 있다. 하지만 팬은 절대 경기에 나서지는 않는다. 

그 선수의 정보는 쭉 나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 선수를 알지는 못한다. 

그 선수가 점점 못하거나 팀이 계속 패하면 열정이 식고 팀을 갈아타기도 한다. 

다른 팀으로 갈아타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팬이기 때문에. 


제자는 예수와 함께 죽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길은 팬의 길과 제자의 길 두 개가 아니라 제자의 길 밖에 없다. 


예수와 함께 땀흘리고 함께 뛰어다니고 함께 피흘리고, 예수님이 내게 제일 중요해져서 그가 꿈꾸시는 것이 나의 꿈이 되고 그가 이루시려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된다.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가정교회를 하려는 것도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만드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꿈이 그것이다. 자기의 몸 된 공동체를 이 세상에서도 구현하는 것, 그것이 교회이며 그 교회 공동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목장' 이라는 형태이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때 예수 제자 된 맛이 나타나는 것이다. 


34-35절 말씀에 '소금' 얘기를 하신다. 

'소금이 있는데 만일 그것을 국에 넣었지만 간이 안 맞는다면 그 소금이 무슨 소용이냐'


예수의 제자가 예수의 맛이 없으면 비참한 것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예수가 중요한 사람들, 인생의 목표가 예수인 사람들, 예수 공동체를 세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들, 

이것이 예수의 맛이 배인 자들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정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닦아놓으신 그 길을 순종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 길은 예수를 사랑하되 다른 모든 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하는 모든 일의 과정과 결과로서 그분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진짜 계산 잘 하기 바란다.

무엇이 성공의 길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주마음교회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