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문

[2022-02-13] 주일예배 / 누가복음 9:1-9 / 내 능력만 가지고 가라

주마음교회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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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를 통해 부어지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기를 늘 주님 앞에 사모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주님의 목적을 내 목적으로 삼아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를 바란다.


여행 갈 때 짐을 어떻게 챙기는 스타일인가? 

처음에는 필요할 수도 있는 모든 목록을 다 챙겨서 다니다가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필요없는 것들을 빼면서 점점 가방이 작아지게 되고,나중에는 짐도 가볍고 마음도 편한 여행을 하게 된다. 


인생 길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서 열심히 노력도 하고 꼭 잡아야 할 것 같아서 마음 졸이며 공을 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로 필요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좋은 인생이란 많은 것들을 우겨 넣고 수집하는 인생이 아니라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긴 인생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꼭 챙겨야 할 것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의 주 되심을 알고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고백하게 되었다면 그런 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권능' 이다.


예수님이 사역들을 해 나가실 때 누가복음 4장에서 살펴보았던 말씀이 근간이 된다.


이사야 61장을 인용한 누가복음 4:18에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포로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를 읽으시고, 

'이 말씀이 너희들의 귀에 지금 응하였다.' 말씀하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님이 공생애 3년간 어떤 사역을 하실지를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하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이다. 

그러므로 예수 제자의 목적도 동일한 것이 된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또는 우리 자신도 삶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그냥 방황하면서 마음이 팍팍하고 가난해진다. 

그런데 그 마음이 가난해진 자에게 '아 그래서 내가 살아 있구나, 이것을 위해 내가 사는구나' 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삶에 치이고 병에 눌려 있고 죄의 종노릇하면서 포로되었던 삶을 살아가던 자들이 예수님의 진리이신 말씀을 듣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일을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선포' 와 '해방' 이다. 



1. 예수님의 목적에 참여하는 영광


예수님은 이 사명을 스스로 다 완수하실 수 있다. 

예수님의 권능은 창조주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의 선택은 복음을 선포하고 자유롭게 하는 두 가지 사역을 자기 제자들에게 나눠주기로 하신 것이다. 

그분의 기쁘신 뜻 가운데 결정하신 주님의 작정이다. 


그 결과로 열두 제자들과 오늘날까지 믿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 두 가지 주님의 사명을 그대로 받아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진로를 결정하여 일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의 결과로 내 곁에 있던 누군가 자유롭게 될 수 있다면 잘 산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이 나의 목적이다. 

예수님이 나누어주신 사명, 하나님의 나라가 내 목적이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예수의 제자들이다. 


[스케이팅 계주 시합을 하는데 만약 한 선수가 별도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계주 시합의 목적은 이기는 것인데, 내가 얼마나 우아한 폼으로 스케이팅 하는지 보여주는 것, 내가 초반부터 얼마나 스퍼트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등 별도의 목적을 가진다면 그 팀은 망한 것이다.

이긴다면 내가 좀 더 드러나거나 부각되지 않더라도 목적에 부합된 것이다.] 


예수 제자들의 목적은 예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을 잘 산 것이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별도의 목적을 갖게 되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주 예수의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교회가 다른 목적을 갖게 되면 교회는 교회답지 못하게 되고 능력은 사라지고 주권자가 가졌던 사명과 권능은 나타나지 않게 된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가 사역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주님께 기도한 결과로 복음이 안 들렸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가까이는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일터와 다른 민족에게까지 우리 교회가 서 있는 결과로 그런 일들이 계속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주인의 목적에 부합하는 교회이다. 


[22세의 '케이시 도슨' 이라는 미국 스케이트 선수의 사연이 기사화 되었다.

그는 올림픽 개막 3주를 앞두고 코로나 확진이 되서 4년간 준비한 것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검사를 45번이나 받고 결국 회복되었고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28시간이나 여행한 끝에 베이징에 도착했는데 그 날이 경기날이었다.

그런데 수화물로 부친 스케이트날도 분실되어서 다른 선수의 스케이트를 빌려서 극적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고 29명 중 28위를 하였다.

백미는 이 선수가 인터뷰 할 때 한 말이다. 

'내가 지금 여기 베이징에 와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치른 것만으로 꿈꾸는 것 같고 영광스럽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우리에게 나눠주실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정직하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영광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무엇이기에 길바닥에 구르는 것 같은 인생을 살던 자를 부르셔서 사람을 자유케 하는 일을 하게 하시고 내 입술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십니까, '주 예수의 목적이 어떻게 나의 목적이 되도록 저를 초청해 주십니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안될 것 같은데 자꾸 구원받는 분들이 나타나고 신앙생활에 힘을 잃어버렸던 분들이 다시 회복되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사역에 우리를 끼어주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봉사나 물질이나 시간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드려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거기에 끼어 주시는 것이 너무 영광스러운 것이다. 


대기업 회장에게 내가 이제부터 당신에게 봉사하기로 했으니 나를 이 기업에 채용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을 구속하시는 가장 거룩하고 고결한 사명을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신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무한 감사하게 되며 이 인생을 감격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 사명 감당에 꼭 필요한 준비물 


주님께서 우리를 끼어주실 때 사명을 주신 후 반드시 권능을 같이 주신다. 


1절. '예수께서 그 열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셨다' 


목적은 복음을 선포하고 해방하는 일인데 그 일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자유케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잘 알 텐데 내가 누구를 돕고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누군가를 자유케 하고 구속하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리 능력으로는 애초부터 안된다. 

예수님이 병자에게 손을 얹어 구원하시고 그 입을 열어 가르치실 때 사람들의 감겼던 눈이 띄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 권능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종종 예수님의 권능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다. 


전도할 때 가끔 이런 반응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권능이 사실이라면 흥분해서 자기 인생을 전부 투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은 가만히 있는가? 라고 묻는다. 


예수님의 권능은 창조주의 권능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슈를 보면 러시아가 천연가스 매장량이 너무 많아서 가스관을 잠궈버리면 유럽 수십 개 국가들의 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이 적극 대항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전쟁이 나지 않도록, 또한 이런 계기를 통해 그 땅에도 주님의 복음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 대통령의 가스관 붙드는 힘도 상당히 대단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창조주의 권능은 어떤 것이겠는가? 


주님께서 주시는 권능이 오늘 본문에서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당시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필요했던 요소일 뿐이다.

핵심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장구한 기독교 역사 속에서 그 시대에 필요한 창조주의 권능을 교회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어주셨고,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 권능을 붙잡고 일했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던 나라와 열방들 가운데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들이 세워져 온 것이다. 


예수님은 아픈 종을 위해 도움을 청하면서 '말씀만 하시옵소서' 라고 했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 곧 진짜 믿음이라는 뜻이다. 


창조주의 권능을 갖고 계신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시공을 초월하여 이미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이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권능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너의 인생을 사는 동안 나의 권능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라고 하시며 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각 시대에 맞는 권능을 주시는데 예를 들면 한 영혼을 끝까지 붙들고 인내하는 능력, 이런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를 때까지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성실한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3. 권능이 임하는 방법 


그럼 어떻게 하면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간단하다. 그냥 주님 앞에 머물고 있으면 된다. 


많은 것을 배워야 주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다거나 어떤 산에 가서 특별한 경험을 해야 권능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열둘을 부르셔서 모으신 후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다. 

이것이 전부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이 예수님 앞에 머무는 것이다. 


주님 앞에 머물려고 할 때 주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있고, 주님께서 '너가 나의 제자가 되었구나' 하시며 사명과 권능을 부어주신다. 

주님을 사모하며 그분과 동행하려고 하고 주님 말씀 가운데 거하게 되면 꼭 필요한 준비물인 주님의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가면 이 권능의 실체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게시해 주신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권능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예수의 영, 그것이 성령이고 그분으로부터 권능은 임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리고 예수의 영이라 불리는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신다.

그런데 이는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것과 동일하다. 


신학자들은 '성령은 예수의 부재 중에 예수의 임재가 되신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인격되신 성령님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격이기 때문에 친구나 연인과 사귐을 가질 때 이 사람이 날 위해주는 척 하는 것은 다 알게 된다. 

반대로 날 위하고 있지 않는 척 하더라도 위한다는 것을 시간 지나면 다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할지라도 이 사람이 내 인격을 계속 무시하면 그 관계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성령님은 어떤 힘이나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 들어오신 것이다. 


내가 이 성령님을 모른다 하고 계속 죄 가운데 거하기를 즐겨하고 주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바꾸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있게 되면 성령님은 마치 여기 계시지 않는 것처럼 활동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다가 주 앞에 깨어져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통회와 자복하는 제사를 드리고, 때마다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의지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님은 인격이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성령을 통해 능력을 주시면서 예수님이 한 가지 팁을 주신다. 

3-6절까지 말씀인데 한 마디로 말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말아라' 이다. 


보통 어떤 멘토가 팁을 주려면 '이것도 잘해야 한다', '저것도 챙겨야 한다' 등 가르쳐 주고 뭔가를 주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충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자꾸 더 빼라고 하신다.


은화나 빵 등 이런 것들은 너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내게 맡기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만 사명이 빵과 은화에 달려 있는 것처럼 믿기 때문에 주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격을 잘 모르면 이 말씀이 마치 내게 있는 좋은 것들을 자꾸 빼앗아 가시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고 하신다면 그 뜻은 '내가 다 공급해 줄께' 이다. 

이분이 우리 예수님이다. 


기드온은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님께 부름받았을 때 자꾸 이런 증거, 저런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면서 뒤로 뺐다. 

주님은 이 기도를 매우 예뻐하셨다.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를 모으니 3만 2천명이 모였다. 

십수만 명의 미디안보다는 적지만 꽤 많은 숫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처음 돌려보내고 나니 만명이 남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돌려보내라고 하셔서 결국 3백명만 남긴다. 

그 스토리의 맥락은 남은 300명이 얼마나 훌룡한 용사인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 하신다' 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지지 말아라' 라는 말을 믿음으로 잘 들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내 능력만 챙겨 가거라' 가 들린다. 


내 삶을 막는 장애물이 생기거나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삶에 찾아오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 주님께서 우리 가방에 손을 넣으셔서 쓸모없이 움켜쥐고 있던 무겁고 지치게 만드는 짐들을 빼내 주시는 중일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이다. 

정말 정신차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신 주 예수의 목적이다. 


예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가 6-9절까지 기록이다. 


제자들이 나가서 여러 마을에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쳤다.

선포와 해방 두 가지가 나온다. 

원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의 권능이 아니면 복음이 선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도 자기가 잘 살아서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 때부터 주님께 쓰임받는다고 믿는 것은 복음을 잘 모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누군가를 자유케 할 수 있는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주님의 권능이 주어졌을 때 명하시는 대로 하니까 되는 것이다. 


7-9절 보면 헤롯이 놀란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행한 일을 보면서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어떤 물건을 받았을 때 포장을 어떻게 뜯어야 할지 고생하다가 거기 써진대로 뜯으면 아주 쉽게 뜯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포장을 디자인한 사람이 생각해 놓은 것대로 하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되고 힘만 든다. 


예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선포와 치유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더니 선포와 치유가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가 가정 속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목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 해야 할 일은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할 때 많은 준비물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가지라는 준비물, '권능' 만이 바로 우리의 준비물이 되기 바란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제를 통해 부어지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기를 늘 주님 앞에 사모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주님의 목적을 내 목적으로 삼아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럴 때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임을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