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연습입니다. 즐거움은 자연스레 얻어지지만, 감사는 연습하지 않으면 체득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면 알아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놀이를 하도록 모든 것을 준 엄마 아빠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한 어머니가 서너 살 난 아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아들 손에 쥐어주기 직전에 물었습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아들은 잠시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을 뿐 재촉하지도 보채지도 않고 기다렸습니다. 아들은 이전에도 여러번 연습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혜로운 양육입니다. 감사는 자꾸 연습해야 체득됩니다.
가족들 간에도 감사를 연습해야 합니다. 자식은 "등록금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부모는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도 고맙구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은 "날 지탱해 주니 고마워요"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아내는 "가족들 위해 애써주어 고마워요"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가족인 교회 구성원들도 서로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가정, 목장, 교회, 일터는 든든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감사를 연습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무려 26번 등장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먹고 사는 일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 아니라 당연시입니다. 먹을 것이 당연하고, 구원도 당연하고, 도움도 당연합니다. 부모의 노력도 당연하고, 배우자의 애씀도 당연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당연합니다. '당연병'은 삶을 건조하게 만들고, 관계의 문제를 만들어내며, 자기 안의 기쁨이 사라지게 합니다. 당뇨병은 살을 썩게 하지만 당연병은 내면을 썩게 만듭니다. 당연병은 감사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자꾸 감사해야 체득됩니다. 하나님께,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어진 모든 것에.
찬바람이 불면 11월 수능이 다가오는데, 그 뒤에는 곧바로 추수감사절이 따라옵니다. 공교롭게도 "큰 시험" 뒤에 "감사하는 시절"이 따라온다고 생각해 보면 흥미롭지요. 지난 일 년간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혼란과 변화를 겪었고, 개개인들도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 답답한 시간을 보내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감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를 나누고, 감사를 올리는 자들입니다.
마치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 해 겨울에 절반이 사망했지만 그 속에서도 추수할 곡식이 있었음을 감사했던 것처럼, 그래서 그것이 '추수감사절'로 남아 미국교회의 405년의 전통이 된 것처럼, 그리고 이 절기를 받아들여 복음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120년 전에 결정한 우리 선조들처럼, 우리도 감사하기로 결심합시다. 말과 혀로가 아닌 충심과 진실로 감사합시다. 공급자 하나님께 합당한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하는 가족과 동역자들에게 "옆에 있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합시다.
2025년 11월 7일, 주안에서 하나 된 동역자
정진명 형제 드림
감사는 연습입니다. 즐거움은 자연스레 얻어지지만, 감사는 연습하지 않으면 체득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면 알아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놀이를 하도록 모든 것을 준 엄마 아빠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한 어머니가 서너 살 난 아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아들 손에 쥐어주기 직전에 물었습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아들은 잠시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을 뿐 재촉하지도 보채지도 않고 기다렸습니다. 아들은 이전에도 여러번 연습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혜로운 양육입니다. 감사는 자꾸 연습해야 체득됩니다.
가족들 간에도 감사를 연습해야 합니다. 자식은 "등록금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부모는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도 고맙구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은 "날 지탱해 주니 고마워요"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아내는 "가족들 위해 애써주어 고마워요"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가족인 교회 구성원들도 서로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가정, 목장, 교회, 일터는 든든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감사를 연습해야 합니다. 시편 136편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무려 26번 등장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먹고 사는 일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 아니라 당연시입니다. 먹을 것이 당연하고, 구원도 당연하고, 도움도 당연합니다. 부모의 노력도 당연하고, 배우자의 애씀도 당연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당연합니다. '당연병'은 삶을 건조하게 만들고, 관계의 문제를 만들어내며, 자기 안의 기쁨이 사라지게 합니다. 당뇨병은 살을 썩게 하지만 당연병은 내면을 썩게 만듭니다. 당연병은 감사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자꾸 감사해야 체득됩니다. 하나님께,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어진 모든 것에.
찬바람이 불면 11월 수능이 다가오는데, 그 뒤에는 곧바로 추수감사절이 따라옵니다. 공교롭게도 "큰 시험" 뒤에 "감사하는 시절"이 따라온다고 생각해 보면 흥미롭지요. 지난 일 년간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혼란과 변화를 겪었고, 개개인들도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 답답한 시간을 보내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감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감사를 나누고, 감사를 올리는 자들입니다.
마치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 해 겨울에 절반이 사망했지만 그 속에서도 추수할 곡식이 있었음을 감사했던 것처럼, 그래서 그것이 '추수감사절'로 남아 미국교회의 405년의 전통이 된 것처럼, 그리고 이 절기를 받아들여 복음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120년 전에 결정한 우리 선조들처럼, 우리도 감사하기로 결심합시다. 말과 혀로가 아닌 충심과 진실로 감사합시다. 공급자 하나님께 합당한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하는 가족과 동역자들에게 "옆에 있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합시다.
2025년 11월 7일, 주안에서 하나 된 동역자
정진명 형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