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목장의 김영익 목자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제가 누려온 가정교회와, 삶 공부를 통해 느낀 은혜를 나고자 합니다. 지나갈 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은혜가 되는 이 놀라운 현실은 저의 우매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해에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한가지 주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목장식구를 위한 것이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삶 공부를 목원과 같이 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원을 권유하여 봄학기에는 확신의 삶 공부를 인도자로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함께 잘 따라주시는 목원의 배려로 인해서 잘 마칠 수 있었고, 가을학기에는 새로운 삶을 목원과 함께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번째의 새로운 삶 공부였지만, 마치 머리속의 지우개를 두세개는 가지고 있는 듯,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새로운 삶 공부가 또 저의 교만함과 무지함을 내려 놓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삶의 부재는 Arrival kit라는 제목인데요, 이제 천국백성이 되어 믿음의 영역에 도착한 우리가, 삶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존도구과 같은 것을 알아가는 삶 공부라고 목사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 내가 정말 갖추어야 할 것들을 잘 갖추고, 그것들을 잘 활용하며 살아왔는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삶 공부의 처음부터 나오는 단어는 “가족” 입니다. 누구나 그럴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가족이란 단어는 너무도 소중하기도 하지만 가장 아픔이 묻어 나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결혼하여 새로운 가족을 꾸미기 전의 가족이, 어떤 분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늑한 공간으로 기억되지만, 어떤 분에게는 슬픈 음악만 흘러나오는 오르골과 같이 다시 테엽을 되돌리고 싶지 않는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이 듣고 싶지 않은 슬픈 음악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공간에서 청소년기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수련회에게 가서 목이 쉬어라 기도하며 가정 안에 평안이 찾아오길 바랬지만, 다녀온 다음 날이면 그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져 다시금 찾아오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숨죽이는 저녁을 맞이하곤 했었습니다.
내게 나가 이끄는 가족이 생긴다면! 진정 사랑만 하는 가족, 내 생각과 내 자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없이 이타적인 가족,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가족을 이루리라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서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손이 오르라 들 것 같은 살가운 말들로 연애편지를 쓰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듯 외쳤던 아내에겐,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말보다는 핑계와 남탓을 하는 말로 변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평생 엎고 다니며 한없는 사랑만 쏟아 부어주리라 했던 저의 마음은, 오히려 아이의 철없는 반응에 상처받아서 나락으로 떨어져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 쑤 였습니다.
그랬던 제게 스며들 듯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샘물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다니게 된 가정교회를 만나고 나서 부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목장 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왜 나만 그런 삶을 살아와야만 했나… 라고 억울하게 생각했던 마음을 열어 놓고 보니, 모양과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어려운 과정을 겪으신 분을 통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칫 그릇된 생각을 하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방향성을 논의하기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여유 또한 찾게도 하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제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제게, 깨닫게 하게도 하고,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고, 까먹은 것을 되새기 만들어 주었던 삶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삶 공부를 통해서 얻은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하나 실천할 때에 부딛히는 어려움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다시금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어 주는 장소가 목장이 되어서, 저는 조금씩 회복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의 가족이 채워 주지 못했던 것을 영의 가족이 채워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가정교회를 만나서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미완성의 제가 희망을 품게 됩니다.
새로운 삶 공부를 통해서 기억에 남기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이코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특별한 관계로서 가족을 주셨습니다.
파이스, 그리고 우리를 자녀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는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오이코노모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흘려보내는 청기기의 역할을 맡기십니다.
오이코노메오, 그리고 결국에는 관계를 세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가정이 무너져서, 아픈 마음으로 술로 저녁을 보내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혼의 위기로 치닫던 그 친구를 위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기도를 하기도 하고, 만날 때마다 이해와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고, 그 가정은 이제 다시 회복해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좀 전에 말씀드린 네 가지가, 한 가족의 가장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친구를 세울 수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삶 공부가 주신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고난은 있지만 절대로 등을 돌리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겐 회복이란 것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삶 공부의 마지막 단원에서 적었던 결심의 문장을 찾아서 그대로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적은 것은 성령님이 적으신 것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자녀인 동시에 종인 나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사역자가 되어야 목장 안에서 멘토의 역할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도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는 것 같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아무 응답이 없어도 기다려야 한다. 그냥 주님 안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주마음 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 은혜 가운데 거하길 소망합니다.
레바논 목장의 김영익 목자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제가 누려온 가정교회와, 삶 공부를 통해 느낀 은혜를 나고자 합니다. 지나갈 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은혜가 되는 이 놀라운 현실은 저의 우매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해에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한가지 주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목장식구를 위한 것이었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삶 공부를 목원과 같이 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원을 권유하여 봄학기에는 확신의 삶 공부를 인도자로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함께 잘 따라주시는 목원의 배려로 인해서 잘 마칠 수 있었고, 가을학기에는 새로운 삶을 목원과 함께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번째의 새로운 삶 공부였지만, 마치 머리속의 지우개를 두세개는 가지고 있는 듯,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새로운 삶 공부가 또 저의 교만함과 무지함을 내려 놓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삶의 부재는 Arrival kit라는 제목인데요, 이제 천국백성이 되어 믿음의 영역에 도착한 우리가, 삶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존도구과 같은 것을 알아가는 삶 공부라고 목사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 내가 정말 갖추어야 할 것들을 잘 갖추고, 그것들을 잘 활용하며 살아왔는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삶 공부의 처음부터 나오는 단어는 “가족” 입니다. 누구나 그럴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가족이란 단어는 너무도 소중하기도 하지만 가장 아픔이 묻어 나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결혼하여 새로운 가족을 꾸미기 전의 가족이, 어떤 분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늑한 공간으로 기억되지만, 어떤 분에게는 슬픈 음악만 흘러나오는 오르골과 같이 다시 테엽을 되돌리고 싶지 않는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이 듣고 싶지 않은 슬픈 음악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공간에서 청소년기를 지나온 것 같습니다. 수련회에게 가서 목이 쉬어라 기도하며 가정 안에 평안이 찾아오길 바랬지만, 다녀온 다음 날이면 그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져 다시금 찾아오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숨죽이는 저녁을 맞이하곤 했었습니다.
내게 나가 이끄는 가족이 생긴다면! 진정 사랑만 하는 가족, 내 생각과 내 자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없이 이타적인 가족,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가족을 이루리라 꿈을 꾸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서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손이 오르라 들 것 같은 살가운 말들로 연애편지를 쓰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듯 외쳤던 아내에겐,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말보다는 핑계와 남탓을 하는 말로 변하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평생 엎고 다니며 한없는 사랑만 쏟아 부어주리라 했던 저의 마음은, 오히려 아이의 철없는 반응에 상처받아서 나락으로 떨어져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 쑤 였습니다.
그랬던 제게 스며들 듯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샘물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다니게 된 가정교회를 만나고 나서 부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목장 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왜 나만 그런 삶을 살아와야만 했나… 라고 억울하게 생각했던 마음을 열어 놓고 보니, 모양과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어려운 과정을 겪으신 분을 통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칫 그릇된 생각을 하면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방향성을 논의하기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여유 또한 찾게도 하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제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제게, 깨닫게 하게도 하고,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고, 까먹은 것을 되새기 만들어 주었던 삶 공부였던 것 같습니다.
삶 공부를 통해서 얻은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하나 실천할 때에 부딛히는 어려움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다시금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어 주는 장소가 목장이 되어서, 저는 조금씩 회복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육의 가족이 채워 주지 못했던 것을 영의 가족이 채워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가정교회를 만나서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미완성의 제가 희망을 품게 됩니다.
새로운 삶 공부를 통해서 기억에 남기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이코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특별한 관계로서 가족을 주셨습니다.
파이스, 그리고 우리를 자녀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는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오이코노모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흘려보내는 청기기의 역할을 맡기십니다.
오이코노메오, 그리고 결국에는 관계를 세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가정이 무너져서, 아픈 마음으로 술로 저녁을 보내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혼의 위기로 치닫던 그 친구를 위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기도를 하기도 하고, 만날 때마다 이해와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고, 그 가정은 이제 다시 회복해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좀 전에 말씀드린 네 가지가, 한 가족의 가장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친구를 세울 수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삶 공부가 주신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고난은 있지만 절대로 등을 돌리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겐 회복이란 것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삶 공부의 마지막 단원에서 적었던 결심의 문장을 찾아서 그대로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적은 것은 성령님이 적으신 것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자녀인 동시에 종인 나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사역자가 되어야 목장 안에서 멘토의 역할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도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는 것 같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아무 응답이 없어도 기다려야 한다. 그냥 주님 안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주마음 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 은혜 가운데 거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