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나눔터

2025.03 - 경건의삶 은혜나눔 (김혜림 집사)

주마음교회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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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삶공부 목록 중에 제 눈에 들어온 것은 '경건의 삶'이었습니다. 작년의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허무와 죄의식으로 인한 고통을 자주 토로했고, 잘 걸어온 삶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길을 잃은 것 같은 생각에 당혹감이 밀려 왔습니다. 나이 들고 있다는 신호인 건지 죽음과 그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제 모습을 자주 생각하곤 했고, 그럴 때마다 경건의 모양은 가득하나 경건의 열매가 없는 것 같은 제 모습에 두려움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신 분께 소망을 두고, 삶 공부를 계기 삼아 이유와 탈출구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경건의 삶'은 기도, 예배, 묵상 등 내적 훈련과 외적 훈련을 매주 하나씩 실천해 봄으로써 영적 습관을 쌓아가는 유익을 주었습니다. 예배에 미리 와서 준비하는 습관, 일주일에 한번 가정 목장모임을 하는 습관이 생겼고, 자녀를 향한 감정적 언어를 쏟아내는 습관이 끊어졌습니다. 아킬레스건 파열로 남편이 짐짝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남편을 향한 칭찬, 특히 퇴근하고 돌어오면 "와~아빠다!"하며 아이들과 달려나가 환영하는 루틴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유익은 매주 이루어졌던 말씀 묵상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한 것이었습니다. 묵상한 내용을 장문의 글로 표현하는 것에 많은 고충이 따랐지만 전도사님의 조언과 격려에 힘입어 회가 거듭할 수록 멤버들의 묵상이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3주가 흘렀고, 삶공부가 52주가 아닌 것을 아쉬워하며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잘 유지될 것만 같았던 습관들 중 어떤 것은 제 연약함때문에 시들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훈련 만큼은 부여잡고 싶었습니다.

사실 삶 공부 직전이었던 작년 여름, 저희 목장에서는 신약성경을 함께 통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여느 때와는 좀 다르게 베드로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넘게 따랐던 제자였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알게 하셔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한 것 말고는 너무도 형편없어 보였습니다. 그의 혈기의 끝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예수님 무덤에 시체가 없는 것을 봤을 때도,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심지어 요한복음 마지막 장인 21장에서 부활하신 주를 세 번째로 만나던 때에도 허탄함, 공허함, 자책감 가운데 놓여 있던 그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 자처하고, 부활하신 주를 분명 목격했음에도 그저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며 배에 올랐고, 거둔 것은 하나도 없는 꼴이 딱 제 모습 같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이어 사도행전 통독이 시작됐을 때에는 불과 한 장 차이로 전혀 다른 모습의 베드로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요한복음 21장에 머물러 있는데 사도행전을 읽어나갈 때마다 괴리감만 커져서 통독을 그만 놓아버렸습니다. 저의 이러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봐오셨던 목녀님은 많은 말은 하지 않으시고 어느 주일의 목사님 멘트를 인용하여 '오직 성령이 하신다'는 말씀으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경건의 삶' 이후 저는 다시 통독을 하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주일 설교의 본문이 로마서에서 사도행전으로 바뀌는 기막힌 우연이 선물처럼 찾아왔습니다. 미리 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을 간절히 구하고 찾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구하며 말씀을 묵상할 수록 제 안에 복음이 더욱 선명하고 확실해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도들이 곳곳에서 전파했던 복음, 곧 하나님께서 친히 육체가 되셔서 사망을 삼키시고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마음에 분명하게 믿어지면서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멘'이 외치고 싶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성경 에피소드가 아니라 이 복음을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이전에 갇혀 있던 죄의식과 허무한 생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음을 선물로 받는 순간 완전히 해결 받았습니다. 삶에 열매가 없는 것 같다는, 결국 제 의에서 비롯한 생각들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의만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욥기에게 하신 말씀,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는 말씀이 제게 찔림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갓 대학생이었을 무렵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접 벌어 모아둔 몫돈 몇 십만원이 있었는데, 교회 공동체에 필요한 일이 있어 다 드리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별 티도 안 나는 액수였지만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제게 비춰지니 제겐 너무도 큰 감격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얼마 전 제가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또 한번 몫돈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도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주셔서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부터였습니다. 제 의를 찾으려는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것과 싸워야 했습니다. 며칠을 속앓이를 하다가 남편에게 토로했습니다. '이 싸움을 이길 힘이 내게 없고, 이럴 것 같았으면 과거로 돌아가 내 자신을 막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던 이 문제가 복음 앞에 눈녹듯 해결되었습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예수님 앞에 굴복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경건의 삶' 중에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일하기 전에 먼저 암송하고 시작하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그의 의'를 구한다는 것을 묵상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찬양할 때 제가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염려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이 한 명이라도 나가면 그 날은 거의 우울함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아닌 척 하고 있어도 결국에는 입으로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에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어 3분의 1의 학생들이 연거푸 술술 빠져나가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 주 수요예배 설교가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주제였는데 예배 중에 깨달았습니다. '맡길 염려가 이미 내겐 없구나.' 하나님이 원하시면 더하시기도 하고 빼시기도 함을 고백하며 지금은 그저 묵묵히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경건의 삶' 교재의 첫 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훈련은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일과 같다', '영적 훈련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단지 그것은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에 우리를 가져다 놓을 뿐이다'. 이번 학기에는 개설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경건의 삶'이 열린다면 꼭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일'에 여러분도 동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경건의 삶' 지체들을 위해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해주시고 하드 트레이닝 시켜주신 전도사님의 수고에 너무나 감사드리고, 영적 훈련의 통로를 서로 격려하며 함께 걸어준 멤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주마음교회 지체 여러분 신령한 하늘의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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